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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터치 감각과 음의 창조 - 1

by 내가사랑하는클래식 2024. 5. 17.

목차

    피아노의 기기성과 터치

    1709년,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Cristofori, Bartolomeo 1655~1731)가 피아노를 발명한 후 290여 년간 섬세하고 편리한 과학적 기기성으로 개량하는 노력을 거듭하여 왔다. 따라서 피아노 주법도 그 당시 그 주법에 만족할 리 없었다. 체르니는 교칙본을 만들어 제자를 양성했고 그 문하에서 리스트와 같은 피아노의 천재가 배출되었으며 주법의 이론 정립도 점차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교사와 피교육자가 모두 주법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피아노의 특징은 제작자의 기술과 제작 정신, 그리고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것을 실험하는 방법은 몇 가지의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피아노 음을 비교하여 보면 판별이 가능하다. 또한 같은 제작사의 피아노라 할지라도 업라이트와 그랜드의 기계 작동과 해머의 운동에서의 차이점이 크다. 이와 같이 구조와 동작에서의 차이점은 피아노 음의 질과 주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건반을 압건했을 때의 깊이는 9.5mm~10.5mm이지만 평균 10.0mm로 본다면, 그랜드는 5mm 이상 올라올 때 다시 터치하면 음이 울리는 데 반해 업라이트 피아노는 9mm 이상 올라왔을 때 터치가 가능하고 발음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업라이트는 트릴이나 음의 빠른 반복은 그만큼 둔화되는 동시에 음의 투명성이 약화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그랜드가 피아노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이상형이라 볼 수 있다면 업라이트는 맡은 바 역할을 만족스럽게 완수할 수 없는 악기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장소를 한쪽으로 작게 차지한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보급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업라이트가 그랜드보다 약 100년 후에 제작되기 시작한 이유는 결점도 있지만 앞에서 지적한 이점이 있어서이다.

    구조에 있어서도 그랜드는 현이 수평으로 걸려 있지만 업라이트는 현이 상하로 걸려 있다. 그런 점 때문에 해머의 동작은 그랜드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여 기민하게 때리는 데 반해 업라이트는 전후 수평적으로 현을 친다. 또한 그랜드는 해머 자체의 무게로도 제자리에 즉시 되돌아오지만 업라이트는 스프링의 작용과 구조의 미묘한 장치의 도움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업라이트는 그만큼 기민하지 못하므로 매우 빠른 음악의 연주는 효과 면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랜드는 타현에 0.03초가 필요하지만 업라이트는 약 배의 시간인 0.06초가 필요하므로 앞에서 지적했듯이 기민성에서 또는 연속 터치에서 후자가 결점을 안고 있는 동시에 음의 혼탁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는 해머가 현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시간이 그랜드가 0.003초인 데 비해서 업라이트는 구조상 더 길게 현에 닿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명백하다. 따라서 그랜드에 비하면 음 자체가 그만큼 맑지 못할 것이라는 이론이다.

    피아노 카메라로 잡아본 결과로는 피아니스트의 터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머가 동작하는 순간 건반의 속도라고 오트 먼(Ortman.O.1925-)은 보고하면서 그 어떠한 건반 조작도 음의 변화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였듯이 실제 피아노의 미음 창출에서 손가락의 모양과 손의 크기 및 손등의 살, 그리고 손가락 힘의 배분과 터치의 방법, 또는 손을 떼는 순간의 방법과 속도, 손목의 유연성, 각 음의 균형 잡힌 터치에서 음이 곱고 둥글기도 하며 수정같이 맑은 음을 낼 수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이 따스하기도 하고 페달의 오묘한 운용으로 음빛깔이 신비로워서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음을 창출하는 사례를 흔히 접하여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지망자는 좋은 교사의 지도를 받되 피아노의 특징을 익히고 기기성을 살려서 연주한다면 훌륭한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터치의 뜻

    터치라는 용어가 갖는 뜻을 교사나 학습자가 다 같이 올바르게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뜻을 찾아보았다. 왜냐하면 그 용어의 오해에서 빚어지는 피아노 교육의 잘못됨이 더 확산되는 현상을 차단,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즉, 피아노를 '친다'라고 하는 말이 풍기는 인상 때문에 어린이는 거의 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이다. '치고' 두들기는 주법에서 시끄러운 피아노의 음이 발생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친다', '타건'이란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영어의 '터치(touch)', 독일어의 'Anschlag', 이탈리아 어의 'suonare' 그리고 라틴어의 'sono'의 뜻은 '친다' 혹은 '타건'과는 거리가 있다. 즉, 영어의 'touch'를 제외하고는 모두 '친다'는 뜻이 없고 다만,

    1) 닿는다, 건드린다

    2) 감동을 주다, 흥분을 주다

    3) 음이 울리다, 연주하다

    4) 뜻이 있게 노래하다

    등의 가장 피아니스틱한 뜻이 담겨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보다시피 이것은 진정한 피아노스러움의 터치를 잘 시사하는 내용이 아닌가? 물론 피아노는 무거운 손과 팔, 그리고 몸 전체를 건반 위에 내어 던지는 기분으로 다이내믹을 표현하고 향건하며 찌르기도 하고 때로는 치기도 하지만 이러한 동작이 외형적으로는 모두 내리치는 듯이 보여서 '친다'는 말이 사용된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연주자는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법을 동원해 다이내믹과 묘한 명암을 구사하며 울리는 주법으로 청중에게 감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피아노 교육사는 약 100년 전으로 소급하여 생각할 수 있다. 그 100년간 '친다'라는 어휘에서 성장하여 왔기 때문에 그 잘못된 인상으로 인하여 '치는' 주법이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같이 전수된 주법을 바로잡기란 의외로 어려워서 오랜 시간과 애정, 그리고 인내의 대가를 지불하는 노력이 꾸준히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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